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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양인옥(1926~1999)
목포화단의 중견화가 그룹인 ‘삼목회’의 초대회장과 목포미술협회의 고문
광주 제일고 교사, 목포교육대학 교수, 호남대 학장 및 총장을 역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



제주에서 태어나 호남 화단에 이름을 떨친 그는 1926년 8월 24일 제주시 다호동에서 태어났다.
현재 다호동은 도두동에 속한 마을로 제주공항 남쪽, 그곳에서는 한라산이 언제나 날개를 펼친 듯 장대하게 보인다.
후일 한라산 설경을 그리게 된 이유는 유년 시절 머리가 하얗게 뒤덮인 한라산을 보았던 기억 때문이리라.

1938년 보통학교를 마치고 13세가 된 그는 부친을 따라 도일(渡日) .
도일 후 양인옥은 시나노바시(信濃橋)미술연구소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공예학교를 거쳐 도쿄미술학교 입시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진학
당시 오사카미술학교에는 강진 출신 귤원(橘園) 윤재우(1917~2005)와 제주 출신 변시지가 재학하고 있었다.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 말기로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2학년이 되자 연합군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해방을 맞이
해방 2년 후인 1947년 양인옥은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일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판단
전후 혼란을 피해 급기야 바다 빛이 검푸른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고향 제주에 돌아온 양인옥은 그림 그리기에 몰두 제주의 자연은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로 이끌었고
한국의 구상화가 중 양인옥 만큼 일관되게 평생 구상화풍을 고집해온 작가도 드물 것이다.
광주에서 영화 ‘춘희’가 상영된다는 내용 ‘춘희’가 그를 광주로 이끌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제주로 돌아가는 길에 제주행 배가 하역작업으로 벽파진에
일시 머무르는 동안 항구를 서성거리다 불심검문에 걸렸다.
얼떨결에 벽파진에 온 이유를
“나는 미술학교 출신인데 미술교사를 구하러 다니는 중” 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진도농업초등학교(현 진도서중) 교사가 되면서
그는 진도에 정착하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 결혼했다.

작품 활동


1963년 목우회 공모전 최고상 및 국전 입선 12회
 국전 14회 국무총리상, 국전 15회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 후에 그의 작품은 ‘남도미술 100년전’ 출품



작품 설명

눈 덮힌 설악산의 풍경으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붓 터치와 함께 회색조의 사색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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